최고의 과학문화 공간, 투자가 필요하다

조 한 희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관장

“정말 근검하고 박물관을 사랑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신발이 하도 낡아서 새 신발을 사드렸었는데, 나중에 신겠다고 그렇게 아끼시더니 결국 신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네요. 그 분의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 만든 박물관인데... 정말 잘 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국내 최초의 시설 자연사박물관인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의 안주인이 조용히 바뀌었다. 설립자인 이기석 박사가 타계하면서 부관장이었던 조한희 박사가 관장 자리를 물려받게 된 것. 고 이기석 박사의 며느리이기도 한 조한희 신임 관장은 슬픈 사연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고 있었다.

“이기석 관장님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안과의사로 자수성가한 분이셨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그랬듯 우리 청소년들이 과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셨어요. 자연사박물관을 만들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여기서 과학의 꿈을 소중히 키워나갔으면 한다는 꿈을 꾸셨지요.”

개인이 모은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기부문화가 생소한 우리 사회에서 이 전 과장의 자연사박물관 건립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무더위가 한창이던 올 여름 이 전 관장은 박물관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졌다. 전시물을 나르다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땀을 닦던 모습이 조 관장이 본 마지막 건강했던 모습. 국제 자연사위원회 발표를 위해 출장을 다녀오자 이 전 관장의 병세는 이미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돼 있었다.

“책임감을 정말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 박물관이 잘 되면 모범 사례가 될 수 있겠지만, 만약 망해버린다면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에요.”

조 관장의 눈가에 수심이 가득 한 이유는 바로 재원 때문이었다. 박물관을 앞으로 어떻게 잘 운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밤잠도 설치는 상황이란다.

“박물관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박물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시물도 바꿔줘야 해요. 이게 다 재원이죠. 그런데 입장료 수입은 운영비의 10분의 1도 안되고, 이렇다 할 지원도 없으니...”

자연사박물관 입장료(청소년 6천원)가 결코 싼 편이 아닌데도 상황이 그렇게 어렵냐는 질문에 대해서 조 관장은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 사회사업 차원에서 운영하는 S어린이 박물관 사례를 들려줬다. S어린이박물관(청소년 5천원)은 서울 강남에 위치해 찾는 사람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데도 불구하고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에 대한 저의 철학을 고려해도 입장료를 낮출 생각은 없습니다. 가격은 가치에 대한 화폐의 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의 국·공립 박물관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입장료가 상당히 저렴한데, 이 때문에 박물관은 값이 싸야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의 가치를 강조하던 조 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요즘처럼 외국이 부럽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말이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제임스 스미손이 50만달러를 기부한 것이 씨앗이 돼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전 세계 대다수의 자연사박물관들은 개인이 설립한 것을 잘 보살펴 줘 오늘날 그렇게 화려하게 꽃피어 있는 것이에요. 국가에서 계속 지원하고, 박물관을 위해 많지 않은 액수라도 기부하는 그런 문화가 정말 부럽게 느껴집니다.”

“또 선진국에서 가장 신뢰하는 교육기관이 바로 박물관이라고 해요. 미국의 경우 1년 동안 박물관을 찾는 사람 숫자가 NBA(미프로농구) 전체 관람객보다도 더 많다고 합니다. 그게 다 그 나라의 정말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제를 돌려 신임 관장으로서의 앞으로의 포부를 물었다. 조 관장은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이미 국내에서는 소장품 규모면에서 최대이고 최고라면서, 전 세계 최고 자연사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문화는 모든 산업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Made in France를 선호하는 까닭이 바로 문화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훌륭한 문화와 역사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게 다 박물관에 가본 경험이 적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의 훌륭한 문화를 알리는 일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사박물관은 지구상에 한때 존재했거나 지금 존재하고 있는 동식물과 광물의 표본, 인간 생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평생 교육기관이에요. 인류의 과거로부터 현재를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구요. 과학문화를 확산시키는 최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 홍 재 기자 ecos@ksf.or.kr

2005. 12. 27

사이언스타임즈 2006년 12월 27일